2019년 6월 11일 화요일

50가지 사건으로 보는 돈의역사 -1

1부 1장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은 어떻게 승리했는가?

개요

19세기 초 프랑스에게 영국이 어찌 대승을 거뒀는지 집중 조명해본다.
트라팔가르 해전은 세계 4대 해전사 중 하나이다.
  • 살라미스 해전
  • 칼레 해전
  • 한산도 해전
  • 트라팔가 해전
저 당시 프랑스는 러시아 및 영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유럽을 제패한 상태였다.
국가전력으로 비교를 해보면 프랑스는 영국의 국민총생산량의 2배가 넘었고 무엇보다 옛날 전쟁때 필요한 인구와 경제력이 영국을 훨씬 뛰어넘었다.
전력상 당연히 영국의 패배를 모두가 예상하는 전쟁에서 어찌 영국이 이겼는지 에 대하여 경제학 적으로 풀어본다.

전쟁은 무엇으로 하는가?

그 당시 우선 전쟁을 하기 위하여는 물자보급과 전투함이 필요했다.
그 중 핵심전력 전열함을 만들기 위하여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었는데, 만드는것 뿐만 아니라 유지하는데도 엄청난 자본이 소요된다.
국력면에서는 상대도 안되는 영국과 프랑스군이 어찌 비등비등한 전력을 만들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라스 노스"와 "배리 와인개스트"가 1688년도 영국의 명예혁명을 주목하였다.
명예혁명으로 인하여 자본조달이 적대국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그로인하여 트라팔가 해전에서 큰 승리를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을 키운 것이다.

명예혁명?

명예혁명을 내 수준에 맞게 정리를 하자면, 그당시 영국 정부(왕)이 시장에 돈을 빌려서 돈을 잘 안갚았다. (약 10%의 국채금리 ) 당연히 시장은 불안정해졌다.
그러면서 영국 정부는 재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말도안되는 세금(벽난로 세금)을 부과하는 등 못된 짓을 일삼다가 곧 있어 명예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시민들은 왕을 쫒아내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였고, 그 이후 영국정부는 세금을 물릴때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빌린돈을 꼬박꼬박 갚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시장이 안정화 되고 국채 금리는 단숨에 2%까지 하락 되었다.
국가재정이 안정화되면서 정부가 시장에 돈을 낮은 금리로 빌릴 수 있게되었다. 즉 안정자산이라는 인식이 생겨서 세계각국의 투자도 이루어 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해상전력을 크게 키우는데 투자가 시작되었으며, 전쟁 중 에서도 전투보급에 차질이 없을 수 있었다.
그와 반면에 프랑스는 불안정안 상황이었고, 타국을 약탈하여 자본을 조달하였으므로 장기적으로도 계속 불안요소가 있었다.
이러한 경제적인 안정성의 차이로 마침내 유럽의 주도권을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옮겨지게 된것이다.
이때의 많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나중에 산업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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